
나의 여름이 모든 색을 잃고 흑백이 되어도 좋습니다 내가 세상의 꽃들과 들풀, 숲의 색을 모두 훔쳐올 테니 전부 그대의 것 하십시오
그러니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예고 없이 그대와 마주치고 싶다
그대가 처음 내 안으로 들어왔을 때의
그 예고 없음 처럼
-구영주, 헛된 바람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
그리고는 사라지는 것
- '사랑과 가장 먼 단어' 중
너는 언제나 내 우주에 있고 너에게도 우주가 있다면 그곳에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낮에는 티없이 푸른 하늘의 해가 되거나
밤에는 부서질 듯 찬란한 별이 되거나
아기 손처럼 보드라운 바람이 되어도 좋고
향기 짙은 야생 들꽃이 되어
우연히 너의 눈길이라도 끌면 좋겠다.
내 안의 우주가 언제나 너로 인해 그렇게 아름답듯이
예쁜 별이 나의 밤을 달콤하게 합니다
그 별이 나의 운명을 그대에게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나의 심장이 잔잔한 노래로 당신에게 인사하는 것이 느껴지나요?
보세요, 나의 눈에는 아직 외로움이 가득합니다
천천히 당신을 바라보겠습니다
다시 울어도 됩니까?
다시 웃어도 됩니까?
나의 운명을 당신에게 맡겨도 됩니까?
내가 죽기 전에 왔어야 했다. 내가 그것을 바랐다는 걸 죽는 순간에야 알았다.
너를 보고 싶었다.
낡고 깨진 공중전화부스가 아니라, 닳고 더러운 보도블록 틈사이에 핀 잡초가 아니라, 부옇고 붉은 밤하늘이나 머나먼 곳의 십자가가 아니라, 너를 바라보다 죽고 싶었다. 너는 알까?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모를까? 네가 모른다면 나는 너무 서럽다. 죽음보다 서럽다.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다 나는 죽었다. 너는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 내가 본 마지막 세상은 너여야 했다.
- '구의 증명' 중
문득 떠올랐다. 혼자 추위를 견디거나, 첫눈을 기다리는 것. 그리워했던 순간을 그리워하는 것. 그 전부가 모두 낭만이라는 걸.
너는 웃었고 나는 알았다. 먼 시간을 걸어 결국 또 한 번 너를 사랑하는구나. 죽어도 좋겠다 생각했다.
: 향돌, 사랑의 시
너에게 다가설 순 없더라도
이젠 너를 보고있는 내 눈길은 들키고 싶었다
너를 좋아해.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바람이 멈추고 달이 뜨고, 주변에 소음이라고는 없이 고요한 허공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였다. 너를 좋아해
-김성중, 허공의 아이들
'좋아한다'는 표현은 꽃 한 송이 들고 머뭇거리는 느낌.
'사랑한다'는 눈에 띄는 꽃집을 볼 때마다 한참 서 있는 느낌.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류시화, 첫사랑
내 그대를 사랑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 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김인육, 사랑의 물리학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사라지지 않을것이며 이 영원한 시 안에서 당신도 영원할테니까요. 당신이 가진 아름다움 역시 그러할것입니다. 죽음 역시 당신도 그의 그늘에서 배회하고 있다고 으스대지 못할것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고 눈으로 볼수 있는 한, 이 시는 그때까지 살아 그대에게 생명을 줄것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여름
내가 옆에 있어도 당신은 외로울 수 있고,
우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사는 데 사랑이 전부는 아닐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당신이 문앞에 서 있었어요.
그럴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같잖아.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것들은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을 선물했던 유성도,
고운 꽃잎 흩날리며 마음을 간지럽히던 어느 봄날도,
사랑이라 부르고 싶었던 사람도.
그래, 나는 스침을 사랑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나았다.
순간의 기억으로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다.
자꾸 네게 흐르는 마음을 깨닫고
서둘러 댐을 쌓았다
툭하면 담을 넘는 만용으로
피해 주기 싫었다
막힌 난 수몰 지구다
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
젖은 책들은 수초가 된다
나는 그냥 오석처럼 가라앉아
네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태풍은 오고 소나기는 내리고
흘러 넘치는 미련을 이기지 못해
수문을 연다
콸콸 쏟아지는 물살에 수차가 돌고
나는 충전된다
인내심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기를
꽃 피는 너의 마당이 잠기지 않기를
전화기를 끄고 숨을 참는다
때를 놓친 사랑은 재난일 뿐이다
-전윤호, 수몰지구
나도 혼자인게 좋아. 내가 너를 아프게 할까봐 네 곁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도 했었어.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다만 멀리 존재함으로 환상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별들의 세계가 그러하다.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주 그러하듯 쉽사리 사라지고 만다. 그의 진심이 궁금해 읽은 책 속에서 내 마음을 오래 잡아두었던 구절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그래서 내게 얼마나 먼 사람인지. 그도 언젠간 사라질 것이다.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주 그러하듯.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일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마다 계절이 도착하고 계절이 떠나기도 한다. 나에게는 가을이 왔는데 당신은 봄을 벗어나는 중 일수도 있다. 나는 이미 사랑이 시작 됐는데 당신은 이미 사랑을 끝내버린 것처럼.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
책상을 가운데 두고 너와 마주 앉아 있던 어느 겨울의 기억. 학교의 난방시설이 온통 고장 나는 바람에 입을 열면 하얀 김이 허공으로 흩어지던 저녁의 교실. 네가 숨을 쉴 때마다 그것이 퍼져가는 모양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는 생각. 뭘 보느냐고 네가 묻자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너, 라고 대답하고 말았던 그날.
-황인찬, 겨울메모
좋았다.
그저 스치는 인연이라 해도
그 마음에 내가 없다고 해도
되돌아보면
결국 나는 당신이 좋았다.
그래서 그 후로도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보면 누군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있다와 없다는 공생한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누군가가 머물다가 떠난 자리일까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리일까
당신의 마음 속 빈자리는.
-황경신, 생각이 나서 중
찰나의 지극한 행복.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기복 없이 일자로 흘러가는 재미없는 그래프마냥 아무 일 없이 반복되기만 하는 일상.
그런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더,
꼬박 일분간의 지극한 행복일지라도,
그 일상에 '반짝' 하는 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 '반짝'의 순간이 때론
평생의 힘이 되는,
평생의 추억이 되는 기억으로도 남곤 하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또, 하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여행을, 그리고 사랑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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